요즘 책 읽고 있다.
아무개가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그저 웃고 말았다. 취미가 없다고? 취미가 없는 사람들이 <독서>가 취미란다고 하면서 그들은 우스개 소리를 주고 받았다. 하마터면 <독서>가 취미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할 뻔했다. 우스개가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그치만 취미가 없어 독서를 하는 건 아니다. 이즈음, 문자 그대로 나는, <노력>하고 있다.
솔직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독서에 관한 좋은 기억이 없다. 그건 아무래도 영화 한편 보는 것과 똑같다. 늘 말이지만 영화는 고작해야 영화일 뿐이다. 그것을 감안했을 때 두시간은 큰 낭비가 아니다. 때로 좋은 영화도 있다. 그렇지만 재미없거나 의미없거나 이도저도 아닌 영화는 더욱 많다. 나는 아무 영화나 봤다. 참 많이도 본 편이지만, 막상 기억나는 건 없다. 그에 비하면 책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고작 한권의 책을 읽으려고 여러 시간 쏟아가며 기를 쓰지만 - 그게 이도저도 아닌 쓸모 없는 책이란 걸 안 때는 늘 너무 늦는다. 내가 독서하는 자세의 반은 의무감이다. 그 의무감의 정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이것은 절박을 넘어 강박이다.
스무살때 그랬듯이 아무 생각 않기 위해서 읽는다. 읽는 와중엔 내가 책을 읽고 있는지 혹은 딴생각 - 그게 뭐가 되었든 지간에 - 하고 있는 지가 명확해진다. 내용이 이해 된다면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만든다. 이즈음에 와서야, 생각이 제멋대로 나돌아다는 게 얼마나 불쾌한 일인 지를 알았다. <무의미>를 말하는 건 아니다. 독서가 유의미해 지기도 참 어려우니까. 와중에 약간의 의미를 따져보기 위해서 <굳이> 방에다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놨다. 한주마다 한권 씩 뗐고, 이제 여섯 권째다. 여지껏 번역된 글은 되도록이면 안 읽었는데, 번역을 못믿어서가 아니라, 그게 유명한 아무개의 글인지 번역가의 글인지 때때로 헷갈렸기 때문이다. 읽을 게 쌔고쌨는데 <번역가>의 글을 읽을 건 뭔가. 그럼에도 줄거리는 남겠지 싶고, 아무나 다 입에 올리는 책을 아예 모른다는 게 쪽팔려서, 아무래도 그런 편이어서, 굳이 손을 댔다. 당연, 태반은 번역이 의심스러웠다. 당연하지 않은가, <번역>된 책이라는 데. 내 불편한 심기는 이 전집을 다 읽을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전집을 구매한 이들의 댓글을 보면, 우리 아이 - 초중딩으로 추정되는 - 가 참 좋아하더라고 썼는데, 도대체 그 천재적인 아이들은 누구인가. 내게 이 책들은 지독히도 어렵다. 어떤 건 번역가의 자질에 대한 의심으로, 어떤 건 내가 가진 <난독증>이나 경험의 <부재>로.
독서의 결과로 얻은 것은 편만한 귀차니즘. 꽤 오래전의 기억을 되살리듯 다시 나는,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며, 생각은 하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법을 실천하고 있다. 확실히, 말을 하려는 노력보다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자연스럽다. 이것으로 인해 혹여나 퇴행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은 - 늘 그렇듯 여전히 불확실하다. 독서의 결과로 얻은 또 한가지는 <반성>이다. 글쓰기의 버릇을 반성하고 있다. 내게 익숙한 - 무능과 무지와 경솔을 반성하고 있다. 자존심과 소유욕을 차리는 것보다 그것을 버리는 게 편하다는 걸 배우고 있다. 책이 가르쳐준 교훈은 아니고, 책 읽는 사이사이 저멀리 안드로메다에서 딴 생각으로 사경을 헤매는 생각들이 안겨다준 선물이다. 해야할 것은 너무 많은 데 귀차니즘이 발을 묶고, 나는 그 사이에서 <의외의> 안락을 누리고 있다. 이 상태는 여러모로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살다보면 말이다, 살다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근래에 두권의 책이 그나마 기억에 남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다. 우연히도 모두 일본 작가의 책이다 - 고 아무개에게 말했더니, 일본어가 한국어와 맞는 부분 - 그게 뭔지는 자신도 모르지만 - 이 있어 번역하기 수월하단다. 번역을 떠나서 이 소설이 어디가 어떻게 좋은 지에 관해 할 말이 없는 바 아니지만, 쓰지 않는 것은, 그러나 꼭 귀차니즘 때문은 아니다. 처음엔 귀찮아서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게 버릇이 되어 어떻게 쓰는 지를 잊어 버린 듯싶다. 써보려고도 했으나 내가 쓴 단어들이 우스워 견딜 수 없었는데 - 이것이 이즈음의 <반성>에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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