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 하나의 설정만으로 여러 알레고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선지 나열할 것들이 많은데, 대충만 떠듬거려도 다음과 같다.
질에 이빨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가 있다. 도대체 그게 가능이나 한지, 어떤 방식으로 이빨이 붙어 있는지, 생활에 불편함은 없는 지 - 따위는 구차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에 관계를 가질만한 나이에 이른 여자의 고민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여자가 섹스를 <안>하는가 혹은 <못>하는가. 그만 나이때 여자는 이미 종교에 심취했고 순결서약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었다. (이런 여자의 관심사마저 전혀 우연스럽지 않다.) 때가 이르러 백마탄 왕자가 짠하니 나타났을 때, 여자는 매일 밤 남자 생각에 푹 빠져버렸고, 허벅지살을 꼬집으며 <순수>를 외쳤다. 여기까지 오면, 원래 그랬던 건지, 막연히 그러고 싶었던 건지, 그럴거라고 추측했던 건지, 별생각없이 감에 의존해 살아왔던 건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발정난 백마탄 왕자는 여자를 덮쳤고, 그 댓가로 거시기가 잘려나갔다. 영화의 장르는 공포/코미디다. 웃긴 건지 무서운 건지 헷갈리는 장면은 계속 이어진다.
포스터에는 EVERY ROSE HAS ITS THORNS 라고 쓰여있다. 모두가 흔하게 알고 있듯, 가시는 장미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장미는 가시를 필요로 했을까. 그랬을 지도 모르지만, 전혀 명시적이진 않았을 게다. 가시같은 게 필요하다고 막연한 바람은 가졌을 지 모르지만, 그게 하필 <가시>여야한다고는 절대 기대하지 않았다.
여자는 가시를 가졌기 때문에 구차한 욕망으로부터 애초에 배제되었다. 욕망의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혹은, 못한) 여자가 욕망을 비하하며 제 자존을 키우는 것은 손쉽고도 자랑스럽다. 그래서 망나니같은 오빠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던 거다. 그러나 가시 때문에 욕망을 <누리지>도 못한다. 일테면 <사랑>에도 말이다. 실재의 사랑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며 감정적이어서 - 그것은 플라토닉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은 한시간 반짜리 로맨틱 코미디만큼은 전혀 깜찍하지 않으며, 그보다 길고도 질척하다. 삶이 대체로 그러한 것처럼. 그렇지만 우리는 좀처럼 삶이 귀찮다고 여기진 않는다.
우리가 가진 각자의 가시 때문에, 삶은 때때로 불편하지만 - 그것으로 인해 내가 안전해 진다. 이와 비슷한 고백을 성경속의 바울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와중에 우리는 가시가 없어지기를 애타게 기도하며 - 그것이 얼마나한 자가당착인지를 고민하는 동안에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해한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나이 들면서 <성장>한단 뜻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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