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


터미네이터를 처음 본 건 초딩 때 토요명화에서 였다. 삼촌 집에 놀러갔었고, 누군가 대단한 명작이라 소리 질렀고, 과연 대단한 명작 답게 광고가 엄청 길었단 기억이 여전하다. 대개 총알 사이로 막 가던 악당도, 막판이면 한두개의 탄알로 사라지기 마련인데, 그놈의 기계는 끈질겼다. 이전에 포스팅했듯이 그 지구력과 끈기와 목표의식에 매료됐다. 몇 년 후, 2편은 이웃집 구멍가게 TV로 봤다. 구멍가게 누나가 그날 출시된 따끈따끈한 비됴를 빌려왔고, 고만고만한 동네 아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서 TV를 봤다.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여전히 나는 악당이던 T2000의 새로운 기능과 근성에 매료됐다. 이어 3탄은, 형만한 아우 없단 썰을 뒷받침하는 여타의 수많은 시리즈처럼, 별다른 감회가 없다. 전후 상황을 설명해 주던 기나긴, 참으로 기나긴 대화는 - 뭐, 그렇다는 소리겠지,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라는 듯한 엔딩은 - 뭐 그러라는 소리겠지 했다. 4편에선 새로운 기종이 나오긴 했으나 우군이었다. 지구력과 끈기는 찾아보지도 못했으나, 그럼에도, 주연인 크리스찬 베일보다 비교적 양호한 위치를 점했다.

시간여행을 다루는 영화는 언제나 한무더기의 질문을 남겨놓는다. 가지가지 상상을 더하다보면, 이건 숫제 난장판이다. 그나마 터미네이터 시리즈 처럼 돈을 무지막지하게 처바른 웰메이드에선 양호한 편이지만,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 쓰잘데기 없는 질문은 어쩔 수 없다. 예를 들어, 아버지 카일리스가 아직 과거로 가지 않았는데, 그보다 나이가 많은 존코너는 어떻게 존재할까. 카일리스가 과거로 돌아가 사라코너와 사랑에 빠질 때, 존코너는 겨우 탄생한다. 그 존코너는 성인이 되어 카일리스를 만나야 하고, 그를 과거로 돌려보내야한다. 이때 과거로 간 카일리스는 사라코너와 사랑에 빠지고, 존코너는 탄생한다. 그러나 이때 탄생한 존코너는 앞서 탄생한 존코너 일까 아닐까. 이 시나리오를 이해하려면 존코너 카일리스 사라코너에게 각각 번호를 부여하는 편이 낫다. 번호를 부여받은 <각각의> 그들은 무한의 쳇바퀴를 돌며 수많은 존코너와 카일리스와 사라코너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지구를 살고 있을까. 만약 공간은 공유하고 시간축만 다르다면, 그 수많은 시간축이 엉키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더욱 황당한 것은 그들의 하찮은 시간여행 때문에, 애꿎은 지구는 수차례의 멸망을 재차 경험한단 것이다. 처음의 시간여행은 지구 구원이 목적이었으나 결국, 멸망으로 치닫는 뫼비우스의 띠를 엮어놨다. 지구로서는 여간 당혹스럽고도 난감한 노릇이 아니다. 여기서 교훈 하나. 절대

미래에 타임머신이 발명된다 해도, 그걸 타고 과거로 가서 가정을 꾸리진 말자. 타임머신을 소지하게 될 미래의 인간들은 아무래도 신중하고 세밀한 규칙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선지 우린 여태껏 타임머신을 타고 온 미래인을 만나 본 일이 없다. 둘 중 하나다. 인류가 타임머신을 끝내 만들지 못했거나, 그들의 규칙이 너무나 엄격하고 치밀해서 현재의 일반인에게 절대 들키지 않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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