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북경 자전거 (十七歲的單車: Beijing Bicycle, 2001)


북경엔 자전거가 많다. 그러나 북경에 살아본 일이 없는 이에게 <자전거가 많다>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자전거가 있다>가 의미하는 바도 불분명하다. 그건 그저 두개 바퀴에 페달과 핸들과 체인이 달린 고철이 거기에 있단 말이겠지. 요즘엔 돈 주고 사는 경우가 흔치 않으니까, 신문 구독하면서 공짜로 받았겠지. 두 번인가 멍청하게도, 새 자전거를 도둑 맞았는데, 자물쇠가 묶인 것을 통째로 싣고 가버린 흔적을 보면서 멍청하게도, 그 아무개들에게 연민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자전거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 그런 물건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자전거>를 완전히 <재정의>하고 있다.

bicycle is... 세상을 향한 첫걸음
시골 촌뜨기가 상경해서 구한 첫 직장은 자전거 택배다. 첫 월급의 팔할은 자전거 값으로 나간다. 뭐 이런 직장이 다 있지? 운송수단은 거져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는 - 신이 나 있다. 이제 이틀만 더 일하면 자기 소유다. 자전거를 구경하던 구멍가게 주인은 한술 더 떠서, <이제 곧 부자 되겠네> 한다. 청년은 뿌듯한 얼굴로 쑥스럽게 웃는다. 여기서 그들이 지칭하는 <부자>란 뭐지? 자전거를 소유하는 거? 한달 뼈빠지게 일한 월급이 고작 자전거 한대 값인 직장에 다니는 거?

bicycle is... 너를 향한 나의 의지
자전거를 잃어버린 남자는 <그래, 나 자전거 없는 남자다> 소리치듯 여자에게 냉정하다. 자전거를 되찾은 남자는 비소로 적극성을 띤다. <여기 봐, 나 이제 자전거 있는 남자야> 말은 하고 싶지만, 이번엔 여자가 냉정하게 돌아선다. 여자가 자전거 때문에 남자를 좋아한 것으론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자전거를 통한 남자의 소통 의지는 명확해 보인다. 최고급 스포츠카나 연봉 수억의 직장, 천재에 준하는 학벌을 뽑내거나 어디가서 장동건/원빈 닮았단 소리를 지겹게 듣거나 혹은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고위급 인사인 아버지를 두지 않았다면 - 나는 네게 말 걸기가 참 난감하지. 너를 사랑한다는 내 말은 초라하고도 비참하지. 그런데 세상에나, 자전거 라니! <왜 이래 이거, 나 이대 나온 여자야>할 때의 <이대>와 느낌이 비스므리하다.

bicycle is... 삶에 대한 집착, 그리고 불행
착한 아들은 자전거를 사주지 않았다며 애비에게 삿대질 한다. <당연>하게도 자전거를 사주지 못한 애비는 입이 스무개라도 할말이 없다.
아무개들이 자전거를 빼앗으려 들자 그는 자전거에서 절대로 손을 떼지 않으며, 서럽게, 정말이지 서럽게 운다.
누군가 자전거를 때려 밟았을 때, 그는 녀석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쳤다. 그리고 <아픈> 자전거를 메고, <건강한> 자전거들의 사이를 가로지른다. <마이 아파>를 외치는 자전거. 더이상,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니다.

행복이 뭐냐고 묻는다면, 머릿속엔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만큼의 조건들이 떠오르지만... 절대, 절대로 자전거는 한번도 그 축에 껴 본일이 없다. <자전거가 있다>는 말은 그저 두개 바퀴에 페달과 핸들과 체인이 달린 고철이 거기에 있단 의미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 영화는 마치 를 통해 조크를 구사하는 것 같다. 그들의 집착과 허영과 행복은 지나치게 사소해서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어쩐지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다. 말하자면

어쩌면 장동건/원빈을 <전혀> 닮지 못한 것은 내 불행과 관련이 없을 것이다. 행복은 멀지 않다. 보다시피, 돈이나 밥이 나올 리 없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소질이나 적성에도 모자란 글쓰기의 취미로 - 때때로 삶은 룰루랄라 스럽다. 글쓰기의 취미는 생계수단인 자전거보다 사소하지만, 이를 향한 나의 집착은 영화속 그들에 못지 않다.


p.s.

어렸을 적엔 이웃집에 드나들 때 문을 사용하지 않고, 담을 탔다. 슬래이트 위를 아슬아슬 걷기도 했다. 그 얇은 널판지 밑은 십여미터의 낭떠러지다. 그땐 너무 어려서 겁도 없었다. 이 장면을 보니 짠 - 하게 그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집에 산다면 가끔 벽을 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영화엔 어릴 적 기억을 자극하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중국은 저런 갑다고 약간 <부럽다>는 생각은 하다가 - DVD에 담긴 Production Note를 보니, 제작진도 이 지붕을 발견했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맨발로 지붕을 뛰어다녔>단다. 변하는 건 내 주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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