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라는 태그를 만든 건 내가 쓰는 이 모든 것이 말이 되는 지 안되는 지를 나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판단을 보류하고... 때에따라
나는 아무개에게 오타쿠일 것이며, 변태이거나 변종이거나 저홀로 별볼일 없는 세상에 머무는 물음표이거나 할 일이다. 나는 나에게 수많은 물음표이며, 내게서 타인은 그보다 더한 물음표이지만, 당신이 당신에게 얼마나한 물음표인 지 - 궁금하지만 물어 본 적은 없다.
나는 당신에게 몇개의 물음표일까. <글>이라고 끼적여놓은 이것은 당신에게 <글>일까, 헛소리일까, 푸념이나 수다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단어의 집합일까. 그것을 도무지 알 수 없으니까, 보험을 들어두듯 이 모든 것이 <헛소리>의 잠재적 가능성을 지녔다고 단언하는 게 여러모로 유용하며 <안전>하다. 도망 칠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것은 비겁하지만 안전하다. 안전하기만 하다면야 언제든 <비겁>해질 수 있다. 나는 - 별 수 없이 <그런> 인간이다.
초저녁에 산에 올랐다. 이즈음 날씨가 쌀쌀하고 해가 짧았으므로, 나는 점퍼를 걸쳤고, 가는 길에 LED 달린 값비싼 랜턴도
구입했다. 산은 어둡고 조용했으며 오가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도시가 내려다뵈는 산의 중턱에 올라 앉아서 물을 마셨고 몇
통의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꽤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서 도시의 무수한 불빛을 굽어 보았다. 시간은 더디 흘렀다. 바람이 불었고 몸이 으스스 떨렸다. 늘 오던 곳인데 왜인지 어색하고 낯설었으며 - 그게 아늑했다.
어쩌면... 이렇게 쓰는 것은 정말이지 시간 낭비다. 내가 나아지는 방식은 너무나 느려터져서 그걸 손놓고 지켜보는 건 안쓰러울 지경이다. 다르게 쓰는 건 불가능 할 지 모른다. 아마도...
어렸을 적엔 채팅하는 재미에 빠져 살았는데, 기껏 두어달도 안되어 채팅이 얼마나한 <반복>으로 채워졌는 지를 알았다. <반복>은 전형적이며 진부했다. 나이와 사는 곳을 물었고 최근 본 영화에 관하여나 취미 생활을 물었다. 나이가 여든인 경우는 없었다. 안드로메다에 사는 외계인은 없었고 영화는 봤거나 들어는 봤을 제목이었으며, 취미생활은 거기서 거기였다. 곧, 사람을 그룹 짓는 법을 배웠다. 나도 개중의 어떤 그룹에 아주 손쉽게 소속됐다. 이때부터 엉뚱한 <기시감>이 찾아들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술 한잔 진하게 하였으며 노래방에도 갔다. 그들은 분명 최신곡을 불렀으나, 몇년전에도 <최신곡>을 부르는 사람을 여럿 알았다. 그들의 몸짓과 웃음과 농담과 발갛게 상기된 얼굴은 익숙했다. 물론 앞으로도 <최신곡>을 부르는 새로운 사람을 여럿 만나겠지. 그들과도 술 한잔 진하게 할 것이며, 어디선가 들어봤거나 해봤음직한 대화를 나누고 웃고 떠들다가, 헤어질 땐 아쉬운 말 한마디 건네겠지. 진지한 이별에서 cliche를 떠올리며 수많은 물음표에 짓눌린 나는 꽤 치사하고 비열해졌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한번도 똑같은 글을 쓰지 않았지만, 어쩐지 이 모든 말들은 반복된다. 더 많은 말을 쓰고 수다스러워지면서 기시감은 쓸데없이 도드라진다. 가난한 글쓰기는 그 바닥을 <들키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개가 특별하지 못한 건 나의 지독한 <정신병>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최신곡>을 부른 아무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모년 모월의 최신곡을 부른 너를 <아무개>로 쓰는 건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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