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좀 묵직하다, 오랜만에.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은 기계에게 등쳐먹힌다. 아는 거라곤 0과 1밖에 없는 -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쇳덩어리에 휘둘리다니 열받지 않을 수 없다. 숭고한 진실은 아직 우리의 깊은 곳 어딘가 감취어 있고, 따라서 미개한 외부의 적은 전의와 동료애를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적어도 뜨거운 <목표의식>은 갖는다. 그게 곧 삶에의 의지다. 그런데 만약, 우리 내부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떨까.
그것이 영화가 말하는 <세상의 끝>이며 진실이다. 암만 배부른 도야지보다 굶주린 소크라테스가 낫다지만, 이럴때도 진실을 알려고 피똥을 쌀까. 진실은 완벽하며 비현실적인고로 언제나 진실에의 추구는 현재 진행형이어야하지만, <세상의 끝>이 0과 1으로 이루어진 경우에, 진실은 현실보다 더 거칠고 투박해진다. 더는 탐구의 대상이 아니며, 이상향일수도 없다. 모르는 게 약인 거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스크린 밖의 우리에게서 진실이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되는 건 불행중 다행이다. 아직 그것은 추구해야할 <무엇>이다. 양파껍질 까듯 한꺼풀씩 벗겨가며 다가서야할 무엇이다. 해야할 숙제가 있다는 것, 무지로 인해 겸손을 배우는 것은 작지않은 행복이다. 그런데 진실이 극히 단순한 덕에, 쉽사리 그 정체를 파헤친 영화속 그네들이 부러운 건 - 우리의 진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지 아닌 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의 존재조차 확언할 수 없다. 그것은 거대한 <믿음>의 철옹성이다.
단지 고행의 길이 힘든 만큼 해탈의 경지가 값질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아무도 해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줄 수 없다. 도대체 <해탈>은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그렇지 않더라도 혹, 진실은 적어도 정직하기는 한가. 노력한 이에게 정확히 그만큼의 제 모습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조삼모사로 농락하듯, 매번 고만고만한 분량의 사실을 약간씩 다른 각도로 보여주는 뿐인 걸까. 한계을 직감하며, 도토리 키재듯, 우물안에서 우물의 깊이를 재는 새로운 방식을 알아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어쨌든, 모르는 게 약이니까 말이다.
덧, 영화의 끝이 해피엔딩인 것은 불만이다. 수천개의 세상은, 윤회를 상징하듯, 저마다 서로에게 물려있어야 했다. 인상적인 장면은 포스터에 그려진 -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인간인데, 영화의 끝은 그 인간에게 탈출구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는 현실에의 메타포를 구성할 수 없다. 명확한 해답/탈출구는 <진실>보다 더 머나먼 곳에 있어야 한다.




